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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사상이 내 인생에 도움을 주는 이유

July 11, 2021

J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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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공하다는 인식은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성경의 전도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허상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무의식 속에 물질적인 것들이 허상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 우연히 반야심경을 읽었다. 모든 것이 공하다고 한다. 놀랍게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가르침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저항 없이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공함 깨닫고 살게된 뒤부터는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마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공은 모든것이 조건지어져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공’ 하면 공허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공은 사실 조건 지어져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무는 물, 흙에서 얻어진 양분, 산소 등등이 모여 있는 것이다. 나무라는 실체 자체는 없다. 다른 존재들이 합쳐져서 나무를 규정하고 있다.

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무언가에 의존하고 있다.

물리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인 것에도 이는 적용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이라는 필터를 거쳐 인식된다. 우리의 머리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결국 우리의 생각에 의존하게 된다. 생각이 세상의 모든 것을 조건 짓게 되는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색이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공하다는 말이다.

조건 짖는 방식에 따라 나의 세상이 바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인지하는 세상을 절대로 넘어서지 못한다. 내가 존재 하는 이상 나의 인지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세상 모든 것이 조건 지어지는 마지막 관문이다. 생각이 현상을 조건 짖는 방식을 바꾸면 세상은 바뀐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다. 쉬운 이야기로 하면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메시지는 조건 지어지는 방식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공을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불필요한 고통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 중 가장 화나는 일을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나를 배신했던 경험, 억울한 일을 당한 경험 등 그때를 생생히 떠올려 보자.

이미 지난 일 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현장으로 간 것처럼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에 휩쓸리기 전에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한번 짚어 보자.

우리가 지금 화내고 있는 사건은 더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마치 그것들이 실존하는 것처럼 만들어 낸다. 우리의 마음이 이 사건을 하나의 실체로 조건 지어 버리는 것이다.

이때 나를 화나게 하는 이 사건이 공 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가만히 바라본다면, 더는 그 사건은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더는 나의 마음은 그 문제에 매여 있지 않게 된다.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더는 직장 생활 에서 겪었던 일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이 공함을 안다면, 화는 자연히 사그라든다.

분노 조절뿐만 아니라 자기 계발, 건강 등 다른 분야에도 공에 대한 이해는 도움을 준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하기가 너무 싫은 상황에 부닥치면 하기 싫은 그 마음의 공함에 대해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본다.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데, 식탐을 조절할 수가 없다. 그때 식탐의 공함에 대해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물을 한 잔 마셔보자. 식단 조절이 더 수월해진다.

이외에도 온갖 인생의 부정적인 것들에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 잠깐 멈추고 공함에 대해 인지 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허무주의에 빠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사실 그러기도 힘들다)

혹자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삶의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욕망은 생각보다 강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공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덧없다고 ‘진짜로’ 느끼는 것은 부처님 정도는 돼야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그 경지를 불교에서는 열반이라고 하고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이 스님들이 지금 하는 일이다)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헬스를 처음 시작하는 여성이 보디빌더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은 만들기 싫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보디빌더 같은 몸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바쳐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건강 목적으로 처음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 공하다는 생각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나를 의미 없이 불행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공을 느끼는 것은 분명히 삶을 더 만족스럽게 만들 것이다.

깨어있는 마음과 명상 수련을 수련하여 공을 깨달을 수 있다.

불교에서 이러한 공을 수련 할 수 있는 방법으로 8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이를 팔정도라 한다. 팔정도는 정견(바르게 보기), 정사(바르게 생각하기), 정어(바르게 말하기), 정업(바르게 행동하기), 정명(바르게 생활하기), 정근(바르게 정진하기), 정념(바르게 깨어 있기), 정정(바르게 명상하기)을 말한다.

이 중에서도 정념과 정정이 공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수련이기에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한다.

정념은 내가 상황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차리려는 노력이다. 위에서 화나는 일이 공한 일임을 알아차리기 위해 했던 일들을 다시 상기해 보자.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기 전에 내가 어떤 반응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면 대상의 공함을 인지할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자세를 깨어있다고 하며, 깨어있음을 수련하여 우리는 세상의 공함을 더 자주 인지할 수 있다.

습관적으로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일을 할 때도 내 생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습관이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잘 됨을 느끼고 있다.

정정은 시간을 따로내어 수련을 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다른 것은 일절 하지 않고 나를 관찰하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마치 따로 운동하는 시간을 내어 운동하듯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라 생각하면 좋다. 하면 할수록 마음의 근육이 자라 공함을 인지하고 마음의 동요를 줄이는데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명상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명상을 하느냐고 묻는다.

제일 간단히 배우는 방법은 유튜브에 명상 채널 중 유명한 것을 찾아서 구독하고 기초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이다.

제일 추천하는 방법은 유료 앱을 받아서 가이드를 따라가는 것이다. 돈을 냈기에 가이드의 퀄리티가 괜찮고, 좀 더 책임감 있게 명상을 실천해 나갈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앱을 쓰긴 하지만, 대부분의 명상은 앱의 가이드를 따르는 일은 잘하지 않는다. 대신 명상 음악으로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나의 마음을 관찰한다. 생각이라는 흐르는 시냇물에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강둑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다.

잠을 푹 자고 난 뒤 일어나 샤워하자 마자 하는 명상을 가장 즐긴다. 마음은 분명히 육체의 영향을 받는다. 육체가 좋은 컨디션일수록 명상의 효과가 좋다고 느껴진다. 명상이 잘 된 날은 종일 마음의 동요가 없이 차분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기도 한다. (근육 트레이닝도 잘 받는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는걸 생각해 보면 정말 육체 운동과 명상은 닮은 점이 많다.)

명상으로 마음의 근육을 충분히 단련해 놓으면 의도적으로 공함을 깨닳을 수 있는 빈도가 늘어난다. 세상의 풍파에 좀 더 의연히 대처할 힘이 길러진다.


“아직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괴로운 느낌을 받으면 비탄에 잠기면서 매우 혼미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난 뒤에 다시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과 같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괴로운 느낌을 받아도 쓸데없이 비탄에 잠겨 혼미하게 되지 않는다. 그것을 나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잡아함경>

물리적인 세상이 존재하기에 화살을 아예 맞지 않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스스로 화살을 두 번 맞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상의 공함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계속 화살을 쏘아대며 괴로움을 자처하기 쉽다.

어차피 행복하려고 사는 인생이라면, 내가 스스로 화살을 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굳이 불행을 자초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동의한다면, 지금 여러분에게는 공이 필요하다.

증권사 연구원 -> 블록체인 컨설팅회사 창업 -> 개발자. 커리어 전환의 달인입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꾸준히 하면 어디서든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개발 실력, 마음의 자유에 관심이 많습니다. 애쓰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사는 삶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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