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ning Man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어

October 26, 2020

EDDY

이자카야

평일 저녁. 선릉역 근처의 한 일본식 선술집.

나는 문 앞에 있는 천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 몇 분이세요?”

직원이 물었다.

“아, 저 일행이 있는데…”

나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오 여기요, 여기!” 벽 쪽에 있는 테이블. 남자 한 명이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늦어서 미안”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있는 사람은 세 명이었다.

편의상 이들의 이름은 A, B, C라고 하자.

이들은 사실 대학교 동아리 후배다.

“선배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아, 아니에요. 뭘 제가 얼마나 선배라고.

저 깍듯한 거 싫어해요. 그냥 저희 말 편하게 하죠. 오케이?”

“그… 그럴까?”

시켜 놓은 술과 안주가 나왔다. 안주는 오코노미야키에 치킨 가라아게.

오늘 처음 본 후배들이지만, 다 낯가리는 성격은 아닌 듯 했다.

술잔이 몇 번 오가자 분위기가 편해졌다.

“왜 멘토링 일부러 신청했어? 궁금하네.”

우리 동아리에는 ‘멘토링’이라는 이름의 제도가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공식적으로 후배가 선배한테 찾아가서 같이 밥 먹는 그런 행사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거다.

보통 자기가 관심 있는 업계에 종사하거나,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선배에게 멘토링 요청을 한다.

선배도 ‘대기업 인사팀 관심 있는 후배면 좋겠네요’ 식으로 선호를 말한다. 거기에 맞춰서 매칭해준다.

전해 듣기로 굳이 나와 밥을 먹고 싶다고 신청을 했다고 하길래, 왜인지 물어봤다.

“여태까지 만나본 선배님들은 뭔가 되게 정석적이었달까. 딱 전형적으로 컨설팅 회사나 투자 회사 가신 그런 분들 있잖아.

근데 형은 여태까지 커리어를 보니까 딱 봐도 ‘하고 싶은 거 하는 사람’인 거 같더라고. 그래서…

“하고 싶은 거 하는 사람ㅋㅋㅋ 커리어만 봐도 그게 보이나?”

“어ㅋㅋㅋ 그래서 왠지 색다르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궁금해서.”

“나도 뭐 엄청나게 큰 그림 그리고 살아온 건 아닌데…”

나는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왜 그 일을 시작했고, 왜 그만두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워낙 자주 들은 질문이라 별생각 안 해도 쉽게 읊을 수 있었다.

“… 그래서, 여기까지 왔네. 사실 나도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하나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있어.

남들이 이제 ‘취준’해야한다고 말할 때 나는 준비보다 일단 시도부터 했던 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최대한 빨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번 직접 경험하고 부딪쳐 보는 게 가장 도움이 되더라.”

여기까지 말하자, 후배들의 눈에 ‘과연 예상한 대로 신기한 놈이군’이라는 눈빛이 떠올랐다.

“…근데 여전히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정말 가슴 뛰는 일이 있나? 딱히 없는데.”

B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음. 너무나 공감이 가는 멘트군.

‘하고 싶은 걸 해!’라는 말에 아무리 감동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으면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동기(motive)’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말을 꺼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세계 최고의 기업가가 될 거야.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어!

왠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해야 할 것 같은 ㅋㅋ

그런 걸 생각하잖아?”

“ㅋㅋㅋ그렇지. 유명한 사람들은 꼭 그런 게 있잖아.”

“그래. 특정한 커리어와 연결되거나 많은 사람이 끄덕거릴 만한 거.

그런데 사실 난 사람들의 욕망, 동기는 그렇게 크고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이건 책에서 본 말인데, 그래서 난 작고 사소한 동기, 미시적 동기(micro-motive)란 개념을 믿어.”

“미시적 동기?”

“미시적 동기란 건,

‘난 물건의 각을 맞추는 게 너무 좋다’

‘지도를 볼 때 뭔가 끌린다. 지하철 노선도나 사회과 부도를 몇 시간이고 들여다본 적이 있다.’

‘정해진 예산에 맞춰 어떤 일을 해낼 때 재밌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토론할 때 의욕이 솟는다.’

“뭐 이런 거야.

이런 미묘한 선호, 사적인 욕망, 사소한 동기들은 누구나 있잖아?

이런 것들이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거지.”

말이 길어지자 목이 말랐다. 나는 맥주잔을 채우고 한 모금 들이켰다.

“내 예시를 들어보면, 내가 기자라는 일을 선택했을 때 나는 ‘기사를 쓰고 싶다!’ ‘언론에 기여하고 싶다!’ 라는 거창한 욕망으로 들어간 건 아니었어.

나란 인간은 어떤 사소한 동기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근데 이런 것들이 있었어.”

‘나는 기획하고 시장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때 희열을 느낀다.’

‘나는 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빨아들이고 싶은 열망이 있다.’

‘나는 어려운 개념에 비유를 들어 설명했을 때 뿌듯하다’

“이런 ‘미시적 동기의 조합’이 기자와 잘 맞는다고 봤기 때문에 선택했던 거야.

그랬더니 진짜로 저런 사소한 부분에서 즐거움들이 채워져서 전체적으로 되게 만족하면서 일할 수 있었어.”

후배들은 나를 직접 예시로 들자 그제야 이해가 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마이크로 모티브는 딱 봤을 땐 너무 흔해 보이거나, 너무 사소해 보이거나, 무슨 대단한 비전과는 전혀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해버리지.

하지만 이런 ‘미시적 동기’가 생각보다 되게 중요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에 대한 해상도가 높일 수 있지.”

“오… 뭔가 멋있는 말이네. 미시적 동기. 근데 그런 미시적 동기는 어떻게 발견하는데?”

C가 흥미롭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이것도 책에서 본 건데. 평소 자신이 하는 일을 떠올려봐.

그걸 내가 왜 좋아하는지/싫어하는지 생각해보는 거야.

너 뭐 좋아하는 거 있어?”

“난 축구나 야구 보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잠시 생각하더니 C가 대답했다.

“네가 축구를 좋아하잖아?

그럼 축구를 왜 좋아하는지, 축구의 어떤 면이 내가 가진 미시적 동기를 자극하는지 질문해봐

경쟁에서 승리를 성취하는 순간일까?

패스가 딱딱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

상대 팀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재미?

아니면 다른 사람을 보고 드는 너의 생각도 괜찮아.

‘같이 팀플하던 친구가 이렇게 말을 했는데, 난 그게 기분이 나빴어’ 라든지,

‘누군가 이렇게 했는데 난 그게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라든지.

그런 순간들을 하나씩 파보는 거지.

여기선 솔직한 게 되게 중요해.

내 욕망이 꼭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거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내 마이크로 모티브를 알고 나면 어떤 느낌이야? 가슴 뛰는 일을 찾은 느낌?”

B가 물었다. 약간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아니 그런 건 전혀 아니고 ㅋㅋ;;

좀 다른 시각으로 커리어를 바라보게 된다고 해야 하나?

사소한 동기의 조합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보면 관점이 달라져.

어떤 특정한 산업군, 직업군이라는 분류에서 봤을 땐 전혀 말도 안 되는 선택들이 있거든.

갑자기 축구 선수를 하다가 경영전략 담당자로 이직한다고 생각해봐.

되게 이상하잖아?

근데 사실 세상은 별의별 상황과 맥락이 다 있거든. 경영전략 담당자라고 다 똑같지가 않아.

그 회사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는 회사라서, 프로 축구 시장의 전략과 되게 비슷하다든가.

그 사람도 축구선수라고 다 똑같지도 않지.

축구 선수일 때부터, 상대 팀 플레이를 연구하고 전략을 짜는 데 흥미를 느꼈던 사람일 수도 있는 거야.

이런 디테일한 상황과 작은 동기가 맞물려 들어갔기 때문에 의외의 기회가 생기는 거지.

사소한 동기를 조합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데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도 해.

비유하자면, 사람들이 보기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나는 되게 바늘구멍처럼 생긴 낙타일 수도 있는 거라고.

이렇게 나에 대해서 해상도가 높아지면, 세상이 나눠 놓은 경계는,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

“흠… 그래도 내 사소한 동기들이 어떻게 연결될지는 당장 감이 오지 않는데.

그런 동기들이 맞아떨어진다 해도 시장의 수요도 있어야 하는 거고.”

“맞아, 쉬운 일은 아니지. 나도 사실 여전히 불안해.

지금 찾아 놓은 이 사소한 동기들이 과연 조합이 되기는 할까? 하고 걱정할 때가 많아.

‘이러지 말고 그냥 모두가 인정해주는 대기업 커리어로 가거나, 한 방에 길이 정해지는 전문직 라이선스를 따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도 여전히 해.

하지만… 적어도 이 길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

좀 더 나와 맞는 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확실히 들고.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막막하다면,

크고 대단한 동기 말고, 작고 사소한 동기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A, B, C는 오-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동기를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흠흠 말을 너무 많이 했네.

짠이나 하자!”

스타트업, VC, 창업, 기자, PD를 거쳐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매일 씁니다. 더 자라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배우는 걸 좋아해서 러닝맨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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